시조

“ 한산이씨(韓山李氏) 시조를 소개합니다. ”




01.韓山李氏 始祖 李允卿

權知戶長 高麗 成宗 二年 西紀 九八三年 癸未에 처음으로 十二牧鄕吏를 두었는데 職衛을 보면 堂大等을 戶長이라 하고 大等을 副戶長이라하고 郞中을 戶正이리하고 員外郞을 副戶正이라 하였다.

戶長의 職任은 風俗을 바로 잡는 것이라서 李朝縣邑의 戶長과는 같지 않은 것 같다. 世上에 傳하기를 公은 戶長으로서 官의 곡식을 맡은지 여러해에 出納하는 것이 몹시 公正해서 백성들이 그 惠澤을 입었고 또 소위 看邑을 볼때에 뜰이 떨어진 곡식을 의례 私用으로 돌리던 것을 일체 없에니 이로부터 韓山의 倉庫곡식만은 유독 邑落이라는 것이 없었다. 이것은 오로지 公이 남긴 惠澤으로서 郡人이 公의 德을 追慕하여 木偶像을 만들어 城隍廟 안에 奉安하고 春秋로 제사를 지냈다고 한다.


02. 중시조 목은(牧隱) 이색(李穡)




한산이씨 중시조는 목은(牧隱) 이색(李穡)이다. 서산서원의 숭덕사(崇德寺)에 그의 영정이 모셔져 있는데 원본은 국학진흥원에 기탁되었고 이곳에 모셔져 있는 것은 이모본(移模本)이다. 이색이 1362년 홍건적의 난때 왕을 호종하는 공을 세워 한산부원군(韓山府院君)에 봉해졌다.

그후 자손의 본향는 한산이 되었다.

이색의 영정은 관복차림과 평상복 차람의 두 종류가 있었으나 현재는 관복 차람만 전해진다. 관복차림의 영정도 고려 때의 원본은 전하지 않고 조선시대 그린 이모본이 5점 전해지고 있고 기탁된 영정은 그 가운데 하나이다. 이 영정은 영조44년(1768년 무자년)에 대산 이상정이 삼종동생 종정을 서울로 보내어 5월 23일(음력)모셔왔으며 영정을 우선 운동서재(향로봉 서편에 위치)에 모셨는데 이때 70여인의 사람들이 모였다고 한다. 3년 뒤 1771년에 소산 이광정이 상량문을 지은 영당을 완성하고 9월 24일(음력)에 영정을 옮겨 봉안하고 위판을 쓰고 제사를 지냈다. 이때는 참가 인원이 100여명이 되었다고 한다.

영정은 1983년 6월 20일 시도유형문화제로 지정되었다.




목은선조영정화상찬